88올림픽으로 시작된 정보통신 분야 전성기
지난 18대 대선의 키워드는 복지였다. 고용불안과 실업난으로 인한 양극화 속에, 유권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삶의 허기를 달래줄 ‘보편적 복지’로 쏠렸다.
당시 보편적 복지를 전면에 내건 박근혜 대통령은 지하경제의 축소와 양성화를 위해 세무조사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리고 2년 뒤, 국세청의 채용문은 활짝 열렸다.
2013년 572명이었던 9급 세무공무원 선발규모(일반모집기준)는 2014년 778명, 2015년 1,470명으로 증가세를 보였고 올해도 1,460명에 이르는 세무공무원이 국세청에 입성할 전망이다. ‘조세 정의’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가 공무원 채용계획에 반영된 결과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와 핵심 과제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공무원 채용규모는 정부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어떤 직렬의 채용규모는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어떤 직렬은 찬 밥 대접을 받기도 한다. 연도별 공무원 채용계획을 살펴보면, 그래서 역대 정부의 흐름이 보인다.
◈ 민주화와 88올림픽을 향해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80년대는 시국·공안사범의 구속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1980년에서 1987년 사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으로 검거된 공안사범만 1만2천여 명에 달했다. 86년 한 해만 하더라도 3천405명의 공안사범이 구속됐고 하루 평균 10명의 공안사범이 수사기관을 거쳐 갔다. 당연히 교도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1982년부터 1992년까지 교정직 공무원을 대거 선발한 이유였다. 이 시기 교정직 공무원의 선발 규모는 1982년 1,240명을 기록한 데 이어 1989년엔 2,300명, 1992년 1,200명, 김영삼 정부수립 첫 해인 1993년 1,050명 수준을 유지했다.
전두환 정부가 내세운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국정 목표도 영향을 미쳤다. 교정공무원의 실정 파악 및 근무여건 개선 등의 조치가 잇따랐다. 국가권력의 견제가 불가능했던 시절, 교정공무원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차 그 몸집을 줄여가게 된다.
최근 행정직 채용의 꽃이 세무라면, 80년대엔 체신이 있었다. 현 우정사업본부의 ‘친정’격인 체신부는 우편과 전화, 인터넷 등 정보통신 전반을 담당한 행정기관으로, 1983년과 1984년 550명, 1985년과 1986년 700명을 선발한데 이어 노태우 정부 이후부터는 1,000명이 넘는 9급 공무원을 선발해왔다. 체신부 공무원 채용에 불을 붙인 것은 88년 서울올림픽 개최였다.
올림픽 경기 장면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경기운영시스템을 비롯한 각종 분야의 전산화와 통신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보통신 분야의 고급인력 양성을 위해 체신부 주도로 ‘정보사회 중장기대책’을 수립할 것을 지시하면서 체신부 공무원 선발은 더욱 활기를 띤다. 전국적인 전화 적체해소와 우체국 및 우체통 증설 등도 체신부의 전성시대를 연 요인이었다.
◈ YS가 쏘아올린 정보화, DJ가 이어받다
90년대의 시대정신은 변화와 개혁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기 기초체력을 닦은 체신부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보통신 강국을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에 나서게 된다.
‘직선제 개헌’이란 형식적 민주주의의 시기를 지나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이란 과제를 안고 등장한 김영삼 정부는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이를 가속화시킨 ‘정보화의 물결’에도 주목했다.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한 정보통신부는 그렇게 태어났다.
1994년 연말 정부 조직개편에서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돼 정보화 정책의 수립과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및 정보보호, 방송정책 수립 등을 담당하는 핵심부처로 부상한다.
이 때 추진한 초고속 정보통신망 사업은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았고, 김대중 정부의 지식정보화산업 육성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IT 강국’으로 떠올랐다. ‘IMF 구제금융’ 사태의 여파로 중앙부처 공무원이 대거 감축된 상황에서도 정보통신 분야가 가장 많은 인재를 데려올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신한국 창조’를 전면에 내건 문민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에 따라 세무공무원의 선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정(司正)바람이 휘몰아쳤고 93년에만 적발된 세무공무원의 비위사례만 166건에 달했다.
금융실명제 실시와 함께 93년엔 의원면직 등을 포함해 약 8백 명의 세무공무원이 공직사회를 떠나면서 세무행정력 부족현상이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94년과 95년 각각 750명의 세무공무원을 선발했고, 김대중 정부 또한 세무조사를 대폭 강화하기 위해 전담요원을 4배 증원했다.
2000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900명의 세무공무원을 채용했다. 우리 사회의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재벌기업과 언론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뤄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 참여정부 ‘온탕’, 실용정부 ‘냉탕’
참여정부는 국민의 수요에 맞는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국정운영 전반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열린 정부를 지향했다. 지역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지정하는 등 다방면에 걸친 행정개혁이 추진됐다. 그래서였을까.
노무현 정부는 2013년을 기준으로 국가공무원을 가장 많이 늘린 정부로 남았다. IMF구제금융 이후 심화된 사회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등 새로운 행정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복지인력을 중심으로 각 기관별로 공무원의 증원 흐름이 이어졌다. 5년간 늘어난 공무원만 4만2,341명이었다.
전국 단위 모집을 실시하는 9급 일반행정직 공무원이 최다 선발직렬로 떠오른 것도 이 때부터다.
2006년을 기준으로 인력이 가장 많이 증가한 부처는 교육인적자원부로 노동부는 물론, 정보통신부 또한 전자정부 사업 추진에 힘입어 몸집을 불렸다.
유례없는 ‘큰 정부’의 출현에, 여론은 거부감을 나타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공무원 일자리만 늘린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큰 정부’에 대한 반감은 이후 등장한 실용정부의 ‘작은 정부론’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작고 유능한 실용정부’를 지향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18부 4처 18청’을 ‘15부 2처 18청’으로 축소한다. 15년간 전성기를 누렸던 정보통신부 또한 작은 정부의 물결 속에 잘게 쪼개져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로 소관업무가 분산됐다. 공무원의 정원이 꽁꽁 묶였을 뿐 아니라, 공무원 보수 또한 동결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199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다이어트는 9급 공무원 채용시험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8년만 해도 3,357명에 달했던 9급 국가공무원 선발규모는 1년 만에 30.9% 줄어든 2,320명으로 급감했다. 전년도까지만 하더라도 최다 인원을 선발했던 정보통신부의 자리엔 지식경제부로 기능이 이관된 우정사업본부가 들어섰다. 우정사업본부의 ‘민영화’설에 가슴을 졸였던 수험생들의 안도가 터져 나왔다.
이후에도 국가공무원 9급 선발인원은 2010년 1,706명, 2011년 1,529명에 그치면서 9급 수험생들은 그야말로 혹독한 채용한파를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조두순 사건, 2012년 나주 초등생 납치 성폭행 사건, 오원춘 사건 등 각종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면서 실용정부는 경찰 1천10명과 보호관찰인력 372명을 늘리는 요요현상을 보였다. 2011년과 2012년 교정직이 다시 최다선발직렬로 부상한 계기였다.
이처럼 정부가 추구하는 철학과 핵심가치가 공무원 채용시험의 향방을 결정한 큰 요인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개혁, 변화, 참여와 실용 등의 묵직한 과제를 짊어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국정목표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어온 일꾼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이전에 국민의 일꾼이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인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럴듯한 국정목표라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뜻 공직에 출사표를 던지려는 인재가 없다면 공염불인 탓이다. 공무원 채용계획을 통해 역대 정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 ‘신뢰받는 정부’ 어느덧 임기 후반을 맞은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이다. 행복과 희망, 신뢰는 모두 인간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단어다. 그만큼 어려운 목표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다소 막연한 이 목표도 어느새 공직사회의 일원이 된 수험생들과 함께 그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선명한 발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전의 수많은 인재들이 역대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힘을 보태온 것처럼 말이다. 국민의 행복을 이루기 위한 역사는 그렇게 오늘도 공직입문 수험서를 비춰주는 수많은 전등 불빛 아래서 시작되고 있다.
< 출처 : 공무원저널 >